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FC 바이에른 뮌헨/관련 인물 (문단 편집) ==== 1970년대 ==== * '''[[프란츠 베켄바워]]''' 현역 시절, 감독 시절, 그리고 수뇌부에 오른 현재까지도 내내 바이에른 뮌헨의 영광과 함께한, 살아있는 레전드이자 '''[[요한 크루이프]]'''와 함께 1970년대를 양분했던 불세출의 수비수. ''''카이저(Der Kaiser)''''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는 70년대 바이에른의 유로피언컵[* 현 [[UEFA 챔피언스 리그]]] 3연패와 [[독일 축구 국가대표팀|서독 대표팀]]의 [[UEFA 유로 1972]], [[1974 FIFA 월드컵 서독|1974 서독 월드컵]] 우승을 이끈 주장이자, 감독으로써 [[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|1990 이탈리아 월드컵]] 우승과 1993-94 시즌 [[분데스리가]], 1995-96 시즌 [[UEFA 유로파 리그|UEFA컵]] 우승까지 이끌었고, 회장직에 있던 2001년 리그와 챔스를 제패하였다. 이런 그의 활약 속에 [[FC 바이에른 뮌헨]]은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다. 또한 [[독일 축구 국가대표팀]]도 본격적으로 유럽 최강의 국가대표팀 중 하나로 군림하게 되었다. 현재는 [[FC 바이에른 뮌헨]]의 명예 회장. * '''[[게르트 뮐러]]''' 축구사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무조건 들어가는 전설적인 [[중앙 공격수]]. 페널티 박스 안에서는 누구보다 골 넣는 방법을 잘 알았던 '폭격기' 그 자체. [[분데스리가]]에서 __453경기 398골__, 현역 시절 공식 경기 통산 __669경기 572골__을 기록한, 문자 그대로 폭격기였다. [[독일 축구 국가대표팀]]에서도 __62경기 68골__을 기록했다.[* A매치 최다 득점 기록은 [[미로슬라프 클로제]]가 기록한 71골로 이미 경신되었지만, 출장 횟수 대비 득점 기록에서는 가히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이다.] [[라울 곤살레스]], [[리오넬 메시]], [[크리스티아누 호날두]] 등의 후배들이 경신하기 전까지 3~40년 가까이 한 해 최다골, 챔피언스 리그 최다골, [[FIFA 월드컵]] 최다골 등 득점에 관련된 기록이란 기록은 거의 다 게르트 뮐러의 차지였다. * --'''[[울리 회네스]]'''-- 어린 나이에 바이에른 뮌헨의 영광의 시대를 함께했던 공격수이자 현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. 전도유망한 스트라이커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 [[게르트 뮐러]]와 공격진을 이끌며 3연속 [[분데스리가]] 우승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. 그러나 1974-75 시즌 유로피언컵 결승전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후 회복에 실패하여 27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하는 아픔을 겪었지만, 젊은 나이에 보드진의 부름을 받고 바이에른 뮌헨의 부흥과 현재의 성공을 이끈 훌륭한 스포츠 행정가로서 활약했다. 그가 보드진에 부임하기 전 바이에른 뮌헨의 메이저 타이틀은 고작 7개에 불과했으나, 그가 합류한 후 바이에른은 인터컨티넨탈컵, 유로피언컵, [[UEFA 유로파 리그|UEFA컵]] 등을 우승하고, 15차례 [[분데스리가]] 우승과, 7차례 [[DFB-포칼]] 우승을 하였다. 현역 시절 분데스리가에서의 득점 기록은 239경기 86골. 선수보다는 행정가로써 바이에른을 현재의 위상을 갖춘 클럽으로 성장시키는데 반평생을 바쳤으나, 말년에는 이미지를 구겨버린 사건을 저질렀는데, 2013-14 시즌 항목에 서술했듯 탈세 혐의를 시인하여 금고형을 선고받았고, 최근 회네스 본인은 스스로 독일 스포츠 명예의 전당과 바이에른 명예의 전당 자리를 모두 반납하였다. 2019년 11월 회장 재선에 불출마를 선언하여 은퇴, [[FC 바이에른 뮌헨]]의 명예 회장에 임명되었다. * '''[[제프 마이어]]'''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[[골키퍼]] 계보의 선조격인 명수문장. 뮌헨에서 태어나 오직 바이에른 뮌헨에서만 활약했던 그는 1966년부터 1979년까지 무려 분데스리가 '''442경기 연속 출장'''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, 은퇴 전까지 536경기 출장으로 이 부분에서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. 1975, 1977, 1978년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로 3차례나 선정되었으며, 4회의 분데스리가, 포칼 우승과 유로피언컵 3연패, 1966년 웸블리에서의 준우승과 1974 서독 월드컵 우승, 유로 1972 우승 등 영광의 시대의 바이에른과 [[독일 축구 국가대표팀]]의 부동의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했다. 최근 팬들에게는 20세기 말부터 2008년까지 활약한 [[올리버 칸]]의 포스가 기억에 남아있으나, 바이에른 팬들과 독일 대표팀 팬들은 여전히 올타임 베스트 일레븐을 꼽으라면 골키퍼에 제프 마이어를 선택한다고 한다. 아직까지 역대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하고있다.(685경기) * '''[[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]]''' ''''철의 정강이''''로 불린, 베켄바워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당대 최강의 수비수.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416경기에 출장해 6회의 [[분데스리가]] 우승과 3회의 [[DFB-포칼]] 우승, 1회의 컵 위너스 컵과 3회의 [[UEFA 챔피언스 리그]] 우승을 기록하였다. 특히 [[아틀레티코 마드리드]]와의 1973-74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는 연장 막판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동점골을 기록해 재경기를 이끌었고, 2차전에서 4:0으로 승리해 바이에른은 역사상 최초의 빅이어를 들어올렸다. 유로 1972와 1974 서독 월드컵을 제패할 때도 서독의 부동의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했다. * '''[[파울 브라이트너]]'''[* [[보루시아 도르트문트]]와의 2012-13 [[UEFA 챔피언스 리그]] 결승전 당시 갑옷을 입고 빅이어를 들고 나온 노인이 바로 이 사람이다.] 불과 19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바이에른 뮌헨과 전차군단의 수비를 철통같이 지켜준 전설의 풀백이자, 말년에는 [[카를하인츠 루메니게]]와 함께 'FC 브라이트니게'라는 원투펀치를 형성한 당대 최강의 중원사령관. 바이에른에서의 3연속 [[분데스리가]] 우승과 1973-74 시즌 [[유로피언컵]] 우승 후 잠시 [[레알 마드리드 CF]]로 이적해 2회의 [[프리메라 리가]] 우승과 1회의 [[코파 델 레이]] 우승을 차지하는 등 활약을 펼쳤다. 1978년에 바이에른으로 복귀해 미드필더로 전향했고, 이후 80년대의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며 1983년 바이에른에서 은퇴할 때까지 146경기 66득점을 기록하였다. 바이에른에서의 전체 출장기록은 255경기이며, 현역 시절 전체 기록은 369경기 103골. 또한 [[독일 축구 국가대표팀]]에서도 유로 1972, 1974 서독 월드컵]에서 주전으로 조국의 우승에 크게 일조하고 [[1982 FIFA 월드컵 스페인|1982 스페인 월드컵]]에서도 루메니게와 함께 중원 듀오를 형상하면서 준우승에 크게 일조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